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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IENCE

2019~2021


한 번쯤은 글로 정리해 보고 싶었던 나의 학창 시절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뭔가 자아를 갖추었다? 라고 할만한 시기가 고등학교 때부터여서 그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를 졸업했다. 인문계와는 달리 대학 진학이 아니라 취업이 목표인 학교이다.

나는 솔직히 객관적으로 중학교 성적은 꽤 상위권이었다. 220명 중 10등 안에는 드는 정도?
사실 내 성적이면 인문계 진학이 정배이다. 그런데 나는 왜 마이스터고로의 진학을 선택했을까

당시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공부가 싫었다. 중학교 3년 동안 나는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공부했다. 주변 친구들과의 경쟁, 가족들의 기대, 그리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인한 압박으로 하기 싫은 공부를 너무 억지로 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 있다 해도 돌아가려 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내 중학교 시절이 딱 그랬다. 난 절대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으니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보니 솔직히 이 짓을 3년 더 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방 중학교에서 가지는 이 정도 성적이 전국권에서 통할거라는 자신도 없었다.

남들과 비교해서 어중간한 상위권일 바엔 스페셜 원이 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마침 부모님도 마이스터고 진학 쪽으로 더 밀어주셨어서 그렇게 마이스터고로 진학했다.
어찌 보면 도망간 거긴 하다. 난 경쟁이 무서웠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컸던 것 같다.

어쨌든 딱히 컴퓨터공학 쪽으로 흥미도 관심도 없었지만 진학했다. 
입학 전에 코딩 학원도 다녀보고 중학교 코딩 방과 후 수업도 들어봤는데 딱히 거부감이 없기도 하던 터였다.
솔직히 말하면 난 운이 너무 좋았다. 그저 도피처로 피신한 곳에서 하게 된 일이 내 적성에 딱 들어맞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못 할 지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학년이 된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마인드가 깔린 상태였다.
'난 인문계에서 상위권을 다투고 있어야 했을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무조건 1등을 먹어야 한다.'
이런 오만하고도 자신감 있는 태도가 그 당시 나를 성장하게 해줬다.
학교 수업, 동아리, 프로젝트, 대회 등등 모든 활동을 나서서 했고 이 과정 속에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 
그때 뭔가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학습이 나랑 맞다는 생각을 했다.
인문계 공부처럼 정해진 로드맵이 있는 게 아니라 내 포트폴리오를 내가 직접 만들어가고 그 과정 속에서 내 창의력을 내뿜는 그런 활동들 말이다.

당시 나에게 가장 큰 키워드는 '꿈'이었다.
기존에 인문계 공부만을 해오던 내가 그 과정 속에서 벗어나니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치 평생을 눈가리개를 끼고 트랙 위만 달리던 경주마가 눈가리개를 벗고 트랙을 벗어나 달리는 기분이랄까
정말 소위 말하면 폭주했다. 내 상상력과 꿈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고 정말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면 그런 내 창의력과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주었던 것이 '코딩'이었던 것 같다.
그때 정말 재밌는 코딩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아침에 듣는 기숙사 사감쌤 목소리가 질려서 '사감쌤 목소리 변조기'를 만들 생각도 했고
자습 시간에 선생님 몰래 게임을 하기 위해 '선생님 탐지기'를 만들 생각도 했었다.
물론 그땐 아무것도 몰라 아이디어에 그쳤지만 당시엔 이런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그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친구들과 협업하며 적절한 현실성과 타당성을 부여해 작품을 만들어 대회에 도전하기도 했다.
물론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2학년이 되었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는 내 학교생활을 중단시켰다.
내게 있어 학교는 친구들과 모여 재밌는 상상을 하고 구현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 슬슬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2학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내 일상은 상상을 구현하는 것에서 가진 기술을 연마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혼자 집에서 코딩 공부를 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당연히 실력도 많이 늘었다. 
좀 더 내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작품을 만들어 내다보니 대회 성적도 많이 좋았고 내 포트폴리오에 적을 내용도 풍부해져갔다. 
그런데 뭔가 행복하진 않았다. 다시 중학교 때 공부하던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나보다 뭔가를 더 잘하면 초조해지고 경쟁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동급생들 사이에 경쟁을 의식하며 지내다 보니 이상한 가치관이 생겼었다.
개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더 우월하다는 이상한 생각이었다.
우리 학교는 마이스터고라는 특성상 나처럼 적성에 맞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고 들어오는 학생이 태반이기 때문에 들어와서 적성에 맞지 않아 스트레스받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 공부를 소홀히 하는 친구들도 참 많았는데 나는 이런 친구들을 전부 한심하게 바라봤다.
학교 입학 후 인문계 공부만 바라보게 하는 눈가리개를 벗고 코딩이라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었지만, 이번엔 코딩이라는 세상만 바라보는 눈가리개를 낀 경주마가 된 것이다.
자연스레 나만의 꿈에 대한 생각은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단지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
근데 또 이상한 정의감이라 해야 할지 선민의식이 발동해서 학생회장이 되어서 내가 이 안쓰럽고 한심한 자들을 구원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또 운이 참 좋게도 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당연히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와 글 쓰면서 느끼는 건데 내가 참 오만방자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은 결국 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행동이었고 뭐 그 과정에서 참 욕도 많이 먹은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뭔가 나도 모르게 생긴 열등감이나 상처받은 자존심이 날 힘들게 한 시기도 있었다.
심할 땐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전교생이 모이는 급식실에 가는 것도 힘들었을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은 내가 2021년 3학년 여름 취업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학교를 다니는 3년간 나는 정말 많이 생각이 변하기도 하고 성격도 변했지만 한 가지 절대 변하지 않았던 생각은 바로 '내가 가장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일반 교과 성적에 집착했던 것도 있고 회장을 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결정적으로는 가장 좋은 곳에 취업해야 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바로 지금의 직장이다.
무조건 네임밸류가 높은 곳을 원했다. 그 당시에는 네임밸류를 통한 몸값 높이기, 정돈된 프로세스에서 배우는 것의 가치 등등을 운운하며 정당화했지만 그냥 난 이 학교에서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대기업에 취업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

처음 느낀 건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이다.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해야 할 일에 정말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돌아보면 친구들과의 추억, 동아리와 학생회, 연애, 일탈, 알바 등등..
정말 나를 성장하게 했던 것은 내가 공부하던 것이 아니었단 것이었다.

눈가리개를 쓰고 뛰던 경주마가 결승선에 도착하고 눈가리개를 벗을 때 느낌이다.

또 자연스레 이상한 우월주의 사상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와 다른 길을 가는 친구들을 진심으로 응원할 줄 알게 된 것 같다.
경주를 끝내보니 알겠더라. 내가 달리던 트랙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내가 비로소 결승선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도 참 나 스스로가 비겁한 것 같지만!
이 경주를 통해 난 앞으로 있을 수많은 경주에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경주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참 많은 눈가리개를 쓴 경주마들이 달려오더라
막 경주를 마친 후엔 오히려 이런 경주마들이 참 답답했다.
근데 뭐 나도 그랬고 그들도 이 경주가 끝나면 느낄 것이다.
서로가 모두 다른 트랙에서 뛰고 있음을

뭔가 취업 준비를 할 때부터 취업 너머의 것을 볼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이것도 지금 취업이 됐으니 드는 생각인 것 같다 ㅋㅋ
후회하는 글처럼 써 놨는데 맹세코 후회하는 선택은 절대 없다.
난 항상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이런 생각할 수 있는 것도 그때 내가 그런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취업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한 후 
뭔가 1학년 때 막 눈가리개를 벗었을 때 가진 열정과 행복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인정하고 보니 행복과 여유가 느껴진다. 
어쨌든 그동안 눈가리개를 끼고 달렸기 때문에 얻은 이 안정을 바탕으로
이제는, 한 번쯤은 앞만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달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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